<여섯번째 글> 꽃 나무와 더불어...

딸기는 한해살이인 줄 만 알았는데, 작년에 시들어 죽은 것으로 보이던 것 들이 몇개 살아나서 새싹이 나고 꽃이 피고 또 열매를 맺었읍니다. 오늘 며칠 전에 보니 발갛게 익어 잘 익은 향기를 온통 풍기드니만, 하룻밤 새 개미군단이 덤벼들어 익은 놈은 모조리 딸기서리를 해 버렸습니다. 그래도 계속 새 열매를 맺고 또 개미는 습격하고... 약을 뿌릴까 하다 차라리 더불어 사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 버려 두었습니다.

담장 아이비 덤풀 속에서 자라는 장미는 작년까지는 영양이 부족하였는지 채 꽃잎이 활짝 피기도 전에 오그라 들드니만, 금년에는 꽃송이가 여간 탐스럽지 않아 집사람이 자주 꺾어 성모상에 바치곤 합니다. 이 집에 이사오던 십수년 전에는 우리집 담장은 온통 줄장미 덩쿨로 우거져 장미집이라고들 불렀는데, 이사오던 해에 대대적으로 집 수리를 하느라 장미를 모두 파내어 버려 여간 아쉽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동네 중국집에 음식을 주문할 때는 장미집이라 이야기하면 바로 찾아 배달해 줍니다. 옛날의 화려했던 영광의 추억이 적어도 십수년은 가는가 봅니다.

둥굴레나무는 꽃이 지고 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금년에 처음 심었는데, 꽃 모양이 초롱꽃 같으면서도 수수한 게 관상용으로 괜찮아 보입니다.

창문 아래 해바라기 씨앗 네개가 싹을 틔워 쑤욱 쑤욱 자라나고 있습니다. 은행에서 받아 온 꽃씨봉지 속에 씨앗이 다섯 개가 들어 있어 심었는데, 아마 한 개는 참새녀석의 먹거리에 이바지한 것 같습니다. 제 몸통이 얼마나 허약한 지도 모른 채 자꾸만 키를 키우고 있어 임시로 막대기를 세워 주었습니다. 어릴 적 시골 담장에 붙어 자라던 해바라기. 꽃송이는 우리 머리통보다 훨씬 컸고 키도 어른 키를 넘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과연 이놈도 그 같은 종자인지 아님 요즘 꽃집에서 보는 자그마하면서도 꽃잎만 큰 종자인지 지금으로선 잘 모르겠지만, 허약한 몸통으로 미루어 후자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한달전 쯤 집사람이 동네 뒷산에 등산갔다 오다 어떤 집에 들러서 우리 집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신고하고 부디 잘 키우겠다는 약속을 한 후 며칠을 기다렸다가 얻어 와서 심은 야생화를 비롯해, 마당 구석구석에 봄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주신 분이 학교 선생님이시라 하는데, 프라스틱 아이스크림 숟가락에 매직펜으로 일일이 꽃 이름을 적어 주셨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꽃 같으신 분들이 너무너무 많아서 가끔 보이는 쓰레기 같은 분들에 대한 불쾌감을 상쇄하고도 향기가 나는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본격적으로 땅을 뚫고 마구 솓아 오르는 홍초는, 몇년 전에 뿌리 하나를 심은 것이 엄청 번져나기에 금년 이른 봄에 아예 마당 한켠으로 옮겨 놓았는데 수십촉으로 가족을 늘려 놓았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 여름철에 넓은 잎과 빨간 꽃으로 시야를 시원하게 해 줄 것이 틀림 없습니다.

요놈은 천리향인데 지금은 꽃이 졌지만 년중 매화꽃 다음으로 꽃망울을 열어 엄청난 향기를 내 뿜습니다. 이 집에 이사오던 해에 모종을 심었는데 십수년이 지난 지금 꽃나무의 직경이 1미터도 훨씬 넘고, 꽃을 피웠다하면 가히 꽃송이가 천개는 넘을 것입니다. 집에서 거의 백여미터 떨어져서도 향기를 맡을 수 있는데, 가까이 가면 거의 어질어질 할 정도로 현기증이 돕니다. 누가 처음에 천리향이라 이름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정확한 작명임에 틀림 없습니다.

또 요놈들은 꽃이름도 모릅니다만, 호주 여행 중 시드니 올림픽공원을 산책하고 오다 너무너무 꽃이 아름다워 씨앗을 받아 와서 싹을 틔워 볼 요량으로 일회용 컵에 몇 개씩 뿌려두고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거의 한달 가까이 지나 싹이 텄는데, 솔직히 이 새싹이 그 씨앗의 후손인지 아니면 씨앗은 기온이 맞지 않아 죽고 날아 다니던 다른 잡초 씨앗이 싹을 틔운 것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께 이놈들을 꽃밭에 옮겨 심었는데, 미운 오리새끼인지 백조인지, 까마귄지 백로인지 세월이 더 지나보아야 알 것 같습니다.

감나무, 석류나무, 복숭아나무, 사과나무, 호두나무, 매실나무 등도 한창 물이 오르거나 꽃이 피거나 열매를 맺는 중입니다. 감, 복숭아, 매실 등은 금년 농사가 평년치를 넘지 않나 합니다. 사과는 꽃만 많이 폈을 뿐 열매가 거의 달리질 않았습니다. 호두는 금년에 처음 열매를 달았다가 지금은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아직 너무 나무가 어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올 한해도 사랑스런 꽃 나무들과 더불어 향기롭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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