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글> 대나무물레방아(시시오도시)

대나무 통 속으로 물이 떨어져 가득 차면 물을 받던 입구가 아래로 기울어지면서 물을 토해내고 다시 원위치하는 물레방아. 한적한 절간이나 일본식 전통정원에서 볼 수 있는 이 물레방아를 우리나라 말로 뭐라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본어로는 시시오도시(ししおどし:鹿威し) 또는 소우즈(そうず:添水)라고 한다나요.

정막한 정원에 요놈이 일정한 주기로 물을 쏟아내고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뒷부분이 바닥을 칠 때 나는 "딱" "딱"하는 그 소리. 정중동(靜中動)의 맛이 참으로 일품이면서 동시에 뭔가 알싸한 기분마저 자아내질 않던가요? 시시오도시란 말이 사슴을 놀라게 만든다는 뜻이니 짐작 가지요?

오랜 준비 끝에 이런 호사를 한번 부려보기로 하였습니다. 졸졸~ 흘러가는 맑은 자연수가 있다면 제격이겠지만, 시내 한가운데서는 마치 나무 위로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격(緣木求魚)이지요. 그래서 작은 수중모터를 이용하여 물을 흘려보내기로 하였습니다. 다음에는 기왕에 이 물레방아에서 쏟아져 나온 물이 그냥 호스를 타고 다시 올라가는 것 보담은 졸졸 흘러내리는 모습이 운치가 있을 것 같아 기왓장을 쌓아 물꼬를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잠깐 물레방아라 하면 어딘지 원형으로 빙글빙글 도는 것을 연상하게 되므로, 이하에서는 듣기가 좀 거북하더라도 걍 시시오도시라고 부르겠습니다)

기왓장은 그 동안 여러차례 시골 가는 길에 옹기나 기와 굽는 곳에 가서 휘어지거나 유약처리가 잘 못되어 상품가치가 없는 것 또는 열처리에 실패하였거나 흠집이 있어 버리는 것 등을 기와의 종류에 관계없이 수시로 긁어 모았습니다. 이런 물건들을 기와굽는 공장에서는 저의 같은 사람들이 인테리어용으로 가져가 쓰라고 공장 입구 등에 쌓아두기도 합니다. 아래와 같이 쌓아 올려 구조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조물의 상단부분에 시시오도시를 설치하고 하단부분에는 땅을 조금 파고서 물받는 질그릇을 묻고 수중모터를 설치하였습니다. 이러면 물의 순환체계가 모두 갖추어 집니다. 모터에서 올라 간 물이 시시오도시를 움직이고 그 떨어진 물은 기왓장으로 만든 물꼬를 타도 흘러 내려와 질그릇에 고이며, 이물은 다시 모터에 의해 위로... 이런 체계입니다.

대나무 또한 시골가는 길에 대밭이 있는 집에서 공짜로 얻은 것입니다. 이 정도 굵은 대나무 약 1.5미터 짜리를 여덟개 얻었는데, 그 중 하나로 요놈을 만들었습니다. 나머지 대나무는 그냥 세워만 두어도 집의 품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 처럼 보기가 좋습니다. 대나무 밭 주인되시는 시골 어르신이 요걸 어디에 쓸라는 요량인지 궁금해 하셨지만, 분위기 상 바른대로 말씀드리면 안된다는 것도 공짜로 물자를 획득하면서 터득한 진리 중 하나입니다.

아래는 완성된 것을 가동하는 모습인데, 물 흘러나오는 곳에 잠자리를 앉혀두거나 물이 흘러내리는 곳에 달팽이를 올려두고 기타 기왓장에는 게 두마리가 노니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자연미를 더하도록 해 보았습니다. 물론 이놈들은 다 나뭇가지로 만든 짜가들이긴 하지만, 진짜보다도 더 자연스럽습니다 (내 생각이긴 하지만). 적당한 위치에 작은 규모의 솟대도 세우고, 언젠가 바닷가에 갔을 때 주어 온 몽돌도 깔고, 돌하르방도 적절히 배치하였습니다.

물이 기왓장 층계를 타고 내려오면서 조올 졸 흐르는 소리. 시시오도시가 따악 딱 내려치는 소리. 우리 집 담장 너머에서도 잘 들립니다. 이 소리가 너무 커서, 부딪히는 부분을 실리콘 처리하여 소리를 줄였습니다. 틈만 나면 마당에서 요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고 이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요즈음같이 온갖 종류의 꽃이 피는 계절에는 단지 바라만 보아도 신선이 된 듯한 기분입니다.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신선놀이터도 내 집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제작 총 비용은 수중모터 구입비 9천원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손품 발품입니다. 이런 호사를 아파트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지요. 제가 단독주택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아니 가장 큰 이유입니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