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글> 유월의 휴일 하루

오늘은 20년 전 대통령직선제 쟁취 범국민적 저항운동이 일어났던 날입니다. TV에서는 그 당시의 거리모습이 하루 종일 방영되고 있습니다. 암울했던 시절... 출근 길에도 퇴근 길에도 사무실에서도 하루 종일 최루가스에 눈물을 흘려야 했고... 사무실에서 내려다 본 길거리에는 온통 인산인해에 경찰의 최루탄 쏘아대는 모습과 이른바 백골단의 시위대 체포작전 모습...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시골에 가서 과수원에 원두막을 짓다 왔습니다. 가로 세로 높이 2.5미터의 크기로 낙엽송 원목으로 모양을 잡고 지붕은 너와를 올릴 요량입니다. 그 사이 현지에서 마른 낙엽송을 구하고 껍질을 벗겨 세워 두었다가 지난주에 골조공사를 하였는데, 와이프와 둘이서 무거운 기둥을 세우느라 엄청 고생하였습니다. 암튼 원두막 공사를 위해 몇차례 시골을 다녀 왔는데, 이 모든 작업들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하고 있어 그때마다 체중이 2 ~ 3 킬로그램씩 빠져 나가는 중노동입니다.

시골 땅은 거의 4 ~ 5년에 걸쳐 구하러 다니다가 금년 봄에 구입한 과수원인데 엄청 맑은 계곡을 Y자 형태로 끼고 있는 아주 오지마을의 가장 윗쪽에 위치한 곳으로, 계곡 물이 바로 생수 그 자체인 드물게 맑고 청정한 지역입니다. 이곳을 노후에 살아 갈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지금의 원두막 공사를 시작으로 원형 황토방과 StrawBale House를 내손으로 직접 지어 3년 쯤 후에는 아예 이곳으로 이사하여 살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황토주택에 관한, 스트로베일 하우스에 관한, 친환경 자연농법에 관한, 그리고 농촌생활에 관한 많은 책들을 닥치는 대로 사 모아 읽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에 관해서는 다음 번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우선 사진만 몇 장 올려봅니다.

아래 사진은 과수원에서 바라 보는 뒷 산과 앞 전경 입니다. 뒷산은 매우 아름다운 산인데, 산악인들에게는 등산코스로도 널리 알려져 멀리서도 찾아 오는 산입니다.

아래는 과수원을 끼고 흐르는 계곡입니다. 사진 솜씨가 좋지 못하여 분위기가 영 살아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원두막 골조공사를 위한 낙엽송입니다. 현지 시골어르신에게 부탁하여 산에서 직접 베어 온 것으로 껍질을 벗기고 말리고 있는 중에 찍은 사진인데, 지금은 이들을 사용하여 이미 기둥을 세우고 골조공사가 완료단계에 와 있습니다. 또 다른 사진은 기둥을 세우기 위하여 기초작업을 한 모습인데, 여기에 지금은 기둥이 세워 져 있습니다.

각설하고, 어제 오늘은 모처럼 집에서 한가하게 쉬면서 오뉴월 햇살을 만끽하였습니다. 2, 3주 사이에 마당의 모습도 많이 변하였습니다. 이른 봄꽃은 지고 새로운 꽃이 돋아 났으며, 매실은 무르익어 오늘 맛을 보았드니 오히려 풍개맛이 났습니다. 와이프와 매실을 따며 '이거 매실 맞나' 할 정도 였습니다. 포도도 제법 알이 붙었고, 복숭아는 열매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가지가 옆집으로 넘어져서 붙들어 매어 두었습니다. 수국꽃이 제 세상을 만났고, 풋고추도 맛이 들었습니다. 2층 계단에 심어 둔 단호박도 줄기를 힘차게 내리 뻗드니만 드디어 군데 군데 호두알만한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상치를 뽑고 난 밭에 심은 파가 반찬상에 올라도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감나무도 손톱만한 열매를 붙들고 있고, 담너머 무화과도 제법 굵었습니다. 물옥잠도 통통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페트병을 이용하여 만든 수경재배기에는 처남댁에서 얻어 온 이상하게 생긴 나무를 심었는데, 잎이 붙은 줄기를 거꾸로 물 속 땅에 꽂아 두면 약 한달 후 새싹이 돋아 난다고 합니다만 나무 이름도 잊어 먹었습니다. 재배에 성공하면 뒤에 사진을 올려 보겠습니다.




며칠 전 집 전체를 새로 도색하느라 물건들이 이리 저리 이동 되었고, 그리다 보니 어쩐지 대문과 현관 부분이 허전해서 나뭇가지를 이용해 소품을 몇개 만들어 붙여 보았습니다. 뭐 이름하여 돼지, 닭, 물고기, 두꺼비, 참새, 게, 토끼 등등... 입니다.


이건 자전거 타고 동네 한바퀴 돌다 꽃집에서 발견한 건데, 얇은 망사같은 헝겁 안에 잔디씨가 들어 있다나요. 물을 주면 잔디가 싹을 틔운다 해서 하나 사다가 물방아(시시오도시)에 얹어 두었습니다. 흔한 끈으로 묶어 그 모양을 귀여운 돼지같이 만든 아이디어가 좋아 보였습니다. 그 아래는 시골에서 얻어 온 볏집과 볏집을 이용한 물건인데, 밋밋한 벽에 걸어 두니 마치 장식품같아 보이죠?.

오늘도 하루가 참으로 분주하였습니다만, 오후에는 낮잠도 늘어지게 잤습니다. 이제 밤도 늦었으니 냉장고에 넣어 둔 소주나 한잔 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에...

<여섯번째 글> 꽃 나무와 더불어...

딸기는 한해살이인 줄 만 알았는데, 작년에 시들어 죽은 것으로 보이던 것 들이 몇개 살아나서 새싹이 나고 꽃이 피고 또 열매를 맺었읍니다. 오늘 며칠 전에 보니 발갛게 익어 잘 익은 향기를 온통 풍기드니만, 하룻밤 새 개미군단이 덤벼들어 익은 놈은 모조리 딸기서리를 해 버렸습니다. 그래도 계속 새 열매를 맺고 또 개미는 습격하고... 약을 뿌릴까 하다 차라리 더불어 사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 버려 두었습니다.

담장 아이비 덤풀 속에서 자라는 장미는 작년까지는 영양이 부족하였는지 채 꽃잎이 활짝 피기도 전에 오그라 들드니만, 금년에는 꽃송이가 여간 탐스럽지 않아 집사람이 자주 꺾어 성모상에 바치곤 합니다. 이 집에 이사오던 십수년 전에는 우리집 담장은 온통 줄장미 덩쿨로 우거져 장미집이라고들 불렀는데, 이사오던 해에 대대적으로 집 수리를 하느라 장미를 모두 파내어 버려 여간 아쉽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동네 중국집에 음식을 주문할 때는 장미집이라 이야기하면 바로 찾아 배달해 줍니다. 옛날의 화려했던 영광의 추억이 적어도 십수년은 가는가 봅니다.

둥굴레나무는 꽃이 지고 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금년에 처음 심었는데, 꽃 모양이 초롱꽃 같으면서도 수수한 게 관상용으로 괜찮아 보입니다.

창문 아래 해바라기 씨앗 네개가 싹을 틔워 쑤욱 쑤욱 자라나고 있습니다. 은행에서 받아 온 꽃씨봉지 속에 씨앗이 다섯 개가 들어 있어 심었는데, 아마 한 개는 참새녀석의 먹거리에 이바지한 것 같습니다. 제 몸통이 얼마나 허약한 지도 모른 채 자꾸만 키를 키우고 있어 임시로 막대기를 세워 주었습니다. 어릴 적 시골 담장에 붙어 자라던 해바라기. 꽃송이는 우리 머리통보다 훨씬 컸고 키도 어른 키를 넘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과연 이놈도 그 같은 종자인지 아님 요즘 꽃집에서 보는 자그마하면서도 꽃잎만 큰 종자인지 지금으로선 잘 모르겠지만, 허약한 몸통으로 미루어 후자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한달전 쯤 집사람이 동네 뒷산에 등산갔다 오다 어떤 집에 들러서 우리 집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신고하고 부디 잘 키우겠다는 약속을 한 후 며칠을 기다렸다가 얻어 와서 심은 야생화를 비롯해, 마당 구석구석에 봄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주신 분이 학교 선생님이시라 하는데, 프라스틱 아이스크림 숟가락에 매직펜으로 일일이 꽃 이름을 적어 주셨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꽃 같으신 분들이 너무너무 많아서 가끔 보이는 쓰레기 같은 분들에 대한 불쾌감을 상쇄하고도 향기가 나는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본격적으로 땅을 뚫고 마구 솓아 오르는 홍초는, 몇년 전에 뿌리 하나를 심은 것이 엄청 번져나기에 금년 이른 봄에 아예 마당 한켠으로 옮겨 놓았는데 수십촉으로 가족을 늘려 놓았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 여름철에 넓은 잎과 빨간 꽃으로 시야를 시원하게 해 줄 것이 틀림 없습니다.

요놈은 천리향인데 지금은 꽃이 졌지만 년중 매화꽃 다음으로 꽃망울을 열어 엄청난 향기를 내 뿜습니다. 이 집에 이사오던 해에 모종을 심었는데 십수년이 지난 지금 꽃나무의 직경이 1미터도 훨씬 넘고, 꽃을 피웠다하면 가히 꽃송이가 천개는 넘을 것입니다. 집에서 거의 백여미터 떨어져서도 향기를 맡을 수 있는데, 가까이 가면 거의 어질어질 할 정도로 현기증이 돕니다. 누가 처음에 천리향이라 이름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정확한 작명임에 틀림 없습니다.

또 요놈들은 꽃이름도 모릅니다만, 호주 여행 중 시드니 올림픽공원을 산책하고 오다 너무너무 꽃이 아름다워 씨앗을 받아 와서 싹을 틔워 볼 요량으로 일회용 컵에 몇 개씩 뿌려두고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거의 한달 가까이 지나 싹이 텄는데, 솔직히 이 새싹이 그 씨앗의 후손인지 아니면 씨앗은 기온이 맞지 않아 죽고 날아 다니던 다른 잡초 씨앗이 싹을 틔운 것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께 이놈들을 꽃밭에 옮겨 심었는데, 미운 오리새끼인지 백조인지, 까마귄지 백로인지 세월이 더 지나보아야 알 것 같습니다.

감나무, 석류나무, 복숭아나무, 사과나무, 호두나무, 매실나무 등도 한창 물이 오르거나 꽃이 피거나 열매를 맺는 중입니다. 감, 복숭아, 매실 등은 금년 농사가 평년치를 넘지 않나 합니다. 사과는 꽃만 많이 폈을 뿐 열매가 거의 달리질 않았습니다. 호두는 금년에 처음 열매를 달았다가 지금은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아직 너무 나무가 어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올 한해도 사랑스런 꽃 나무들과 더불어 향기롭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